출범 3년째인 ‘아바타 산업’이 단순한 사이버 캐릭터 제작수준을
넘어서 산업 연관 효과가 큰 사이버 패션 시장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아바타란 네티즌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가공의 상징물.
그러나 10~30대 네티즌들이 아바타를 현실세계에서 옷이나 장식도구를
구입하듯이 아바타 상품에 돈을 쓰기 시작하면서 아바타 산업이 하나의
독립된 산업군으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아바타 제작 과정이 단순한 웹디자인 수준을 넘어서
오프라인 백화점의 패션 매장을 유지, 관리하는 수준으로까지 격상되고 있다.
◆아바타산업은 타이밍이 중요=인터넷 아바타 커뮤니티 업체 ㈜쿼터뷰의
정혜정(27) 대리의 일과는 조간신문 스크랩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직업은
‘아바타 코디네이터’. 정씨는 방송, 인터넷, 잡지, 시장, 백화점 등
아바타 제작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냥꾼처럼 찾아다닌다. 흐름을 정확히 읽고 네티즌들을 사로잡을 만한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다.
쿼터뷰가 최근 인도에 수출한 ‘인도인 아바타’는 정씨의 최근 작품.
정씨는 ‘휴대전화기에 인도인 아바타를 넣을 수 있느냐’는 인도
통신기업의 주문을 받고, 인도 춤 특유의 손동작을 펼치는 아바타를 만들어
시선을 모았다.
이 밖에 ‘사이버 평양’, ‘대구화재참사 사이버 분향소’, ‘이라크전
반대 사이버 촛불 시위’ 등 사이버 공간에서 네티즌들에게 인상을 남겼던
아바타들이 정씨가 발로 뛰면서 제작한 작품들이다.
정씨는 “처음에는 아이템의 모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밤새
웹 디자인 공부에 열중했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며
“아무리 모양이 예쁜 의상도, 유행과 사회흐름을 맞춰 내놓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바타 마케팅 전쟁=포털사이트 네이트닷컴의 아바타 서비스를 기획하는
신현미(33) 대리도 “아바타 제작이 아바타 디자인을 의미하던 시대는 올해
들어 완전히 지났다”고 말했다. 그녀가 결정하는 주요 업무는 아바타 모양을
결정하는 외에 5~6개에 이른다. 예를 들어 그녀는 아이템 가격과 디자인
업체 선정은 물론, 관련 이벤트, 개발 과정, 아이템 상점의 분류까지 기획한다.
백화점으로 치면 MD(Merchandiser·상품기획자) 역할을 하는 셈,
계절이 바뀌거나 주요 사회 이슈가 있을 때마다 아바타 매장의 분위기를
바꿔주는 일도 중요하다. 이 점 때문에 유명한 패션브랜드를 벤치마킹하거나
직접 유치하기도 한다. 신 대리는 “후부, 마루 등 입점한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일 방안을 찾느라 머리가 아프지만, 예쁜 아바타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자식들이 잘 되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아바타 제작자들의 다양한 ‘진화’는 아바타가 사회의 시류(時流)를 민감하게
반영하는 ‘유행 제조기’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 아바타 업계 관계자는
“단 하루라도 잘 나가는 영화, TV프로그램, 광고 카피 등 ‘시류’를 읽지
못하면 아바타 모양이 아무리 예뻐도 그 서비스는 ‘왕따’당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아바타 제작자들은 ‘시류’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메신저 아바타를 제공하는 MSN이 3일 연 ‘수영복 기획전’이 대표적인
예. MSN은 패션 스타일리스트 한영진씨 등 패션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올여름 수영복 실제 신상품을 온라인으로 먼저 선보였다.
일부 업체들에서는 30~40대 소비자의 트렌드를 읽기 위해 성인 사이트의
이미지를 연구하기도 한다.
네오위즈 박진환 대표는 “주 5일 근무제로 야외활동 욕구가 늘어난 직장인들이
사이클·인라인 스케이트 등 스포티한 아바타 아이템을 사들이고, 이라크전 이후
아바타 의상에 밀리터리룩이 유행하고 있다”며 “소비를 결정하는 사회의
‘코드’를 읽는 아바타 업체가 결국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승재 기자
whitesj@chosun.com )
<조선일보/경제 : 2003.06.08 조선일보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