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재래시장에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전문 유통지식을 갖춘
유통벤처가 등장한다.
서울시 재래시장대책반은 3일 재래시장의 빈 점포를 임대받아 새로운
유통방식을 도입해 시범사업을 펼칠 유통벤처 5명을 최종 선발했다.
단순히 찾아오는 손님을 상대로 물건을 흥정해 판매하는 재래시장에서
최신 유통기법과 아이디어를 앞세운 유통벤처가 성공을 거둔다면
이들의 사업방식이 주변 상인들에게 전파돼 시장 혁신이 자연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시는 기대하고 있다.
인터넷이 기본=서울시가 내세운 유통벤처의 첫째 조건은 온라인 판매기법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고객을
찾아가고 지속적으로 고객관리를 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참신한 아이디어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청년실업도 함께 해결하려는 차원에서 지원자는 20대와 30대로 한정했다.
유통벤처 1호로 기록된 안상미(29·여·동작구 상도동)씨는 이런 조건을 두루 갖췄다.
창업 아이템은 재래시장 벤더(Vendor) 사업. 재래시장에서 상품의 질은
좋지만 홍보나 판매기술이 부족해 재고로 쌓여 있다가 사장되는 제품을
발굴해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판매하는 일이다.
안씨의 사업 구상은 대학 졸업 후 인터넷 쇼핑몰에서 상품기획자(MD)로
2년 동안 근무했던 경험에서 출발했다. 인터넷 쇼핑몰에 입점한 사업자가
사이트를 제대로 관리만 하면 뛰어난 실적을 올리는데 비해 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사업자의 실적은 미미한 데 착안했다.
안씨는 "입점료만 내고 손해보는 사람 대다수가 오프라인에서 사업을
벌이는 영세업자였다"며 "판매 상품에 큰 차이가 없었지만 바빠서 관리를
못하는 상인들을 조금만 도와주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았다"고
설명했다.
김상욱(33·금천구 시흥동)씨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을 온라인 판매와
결합한다는 사업 구상을 제출해 선발됐다. 직접 디자인한 의류를 해외에서
OEM으로 생산한 뒤 온라인을 통해 판매한다는 것. 시장에 들어설 점포는
직접 판매는 물론 온라인 판매망을 관리하는 근거지가 된다.
이밖에 강형환(21·강동구 명일동)씨는 맞춤형 액세서리를 온라인으로
주문받아 배송하는 사업으로 재래시장의 박리다매 풍토에 `소품종·고품질·고가
판매`라는 유통개념을 도입할 계획이다.
아동복을 팔기로 한 김현(32·여·동작구 노량진동)씨는 육아상담 사이트를
개설하고 아이들 성장 앨범을 제작해 주는 등 고객 밀착형 홈페이지를 무기로
20∼30대 주부 고객을 공략하며, 화장품회사 근무 경력 5년인 강경헌씨는 화장품
전자상거래 장터를 만들고 유통·재고비용을 줄여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어떤 지원을 받나=유통벤처 선발자들에게는 점포 임대료를 1억3천만원
한도에서 무이자로 빌려준다.
점포는 현재 비어 있는 재래시장 점포 가운데 사업 특성에 맞춰 본인이
고를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기불황과 재래시장 위축 등의 영향으로
시내 2백개 등록시장 중 1백3개 시장에 2천1백63개의 점포가 비어 있다"고
밝혔다.
사업 특성에 맞도록 점포를 개보수하는 비용은 모두 시가 무상으로 지원한다.
이와 함께 창업 초기 점포가 안정화될 때까지 분야별 전문가들이 현장을 방문,
회계·영업설계·판매기법을 직접 자문·지도해주는 경영컨설팅도 실시한다.
시는 이를 위해 서울시산업진흥재단에 `재래시장 경영지원센터`를 설치키로 했다.
그러나 사업상 필요한 각종 부대시설과 장비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안상미씨의 경우 웹디자인이 가능한 컴퓨터 3대와 디지털 촬영장비 등을
포함해 창업자금이 2천만원 정도 필요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최현철 기자
chdck@joongang.co.kr
<중앙일보 2003년 06월 04일 10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