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온라인 쇼핑은 이미지가 중요하다. 아무데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거면 처음부터 흥미를 끌지 못한다. 시중 흐름에 뒤처지지 않게 사이트를 수시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물량이 떨어지지 않았는지를 관리하는 것은 기본이다. | ||||
“제게 맡기면 무조건 뜹니다”
“온라인은 많이 다르죠. 우선 네티즌의 성향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해요. 인터넷에서 쇼핑할 정도의 네티즌이라면 일단 취향이 까다롭다고 봐야죠. 브랜드의 신뢰도를 따지고 마인드도 실용적이죠.” 이재연(30)씨는 삼성몰에서 의류·잡화를 담당하는 머천다이저(MD)다. 조용하고 차분한 말투가 활동적일 것이라는 지레 짐작을 깨뜨린다. 하지만 다소곳한 태도와는 달리 눈빛은 예사롭지 않다. 자신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그에게선 ‘깐깐한’ 고집이 묻어난다. 온라인 머천다이저 역시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상품을 기획하고 구입하며, 상품의 진열이나 판매까지 관장한다. 의류 머천다이저의 경우 올 겨울에는 어떤 종류의 옷을, 어느 시기에, 얼마 만큼, 어떻게 생산할까를 계획하고 총괄한다. 현재 삼성몰의 패션과 잡화코너를 장식하는 모든 제품은 그의 ‘선택’에서 나온 것들이다. 오프라인 실무경험 보약
그가 처음부터 머천다이저가 되겠다는 꿈을 꾼 건 아니다. 하지만 그의 이력은 머천다이저가 되는 데 필요한 모든 소양을 갖추기 위해 마치 예비된 과정처럼 보인다. 그는 연세대 의생활학과를 나와 곧바로 신세계백화점의 자체 브랜드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여기서 3년 동안 고객의 입맛에 맞는 디자인을 만들어내면서 패션감각과 트렌드를 익혔다. 기획에서부터 완제품이 나오기까지 공장을 두루 쫓아다니며 제조과정을 일일이 체크한 경험도 보약이 됐다. 3년 동안의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수입잡화 쪽에서 오프라인 머천다이저로 본격적인 수업을 했다. 2년 동안 가방, 벨트, 지갑, 액세서리 등 세계적 브랜드의 성향과 특성을 분석하고 국내 수요자들의 요구는 제품을 들여와 판매했다. 패션과 잡화 부문에서 앞선 머천다이저가 되기 위해 그는 해외의 유수한 패션박람회를 뻔질나게 찾아다녔다. 프랑스의 유명한 의류소재박람회인 ‘푸르미에르비죵’을 비롯해 이탈리아, 호주, 스위스, 홍콩 등의 패션박람회도 그의 분석 대상이었다. 그 중에 ‘이거다’ 싶은 게 있으면 그 자리에 참여한 세계적 섬유회사와 바로 상담을 진행했다. 온라인은 이미지가 중요 그렇게 오프라인에서 잘나가던 그가 갑자기 온라인으로 뛰어들었다. 새로운 걸 배워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의 머천다이저는 사실 그다지 새로운 게 없거든요. 하지만 사이버 쇼핑은 새로운 영역이죠. 그리고 앞으로 떠오르는 분야이구요.” 지난해 8월 그는 5살난 아이의 엄마였고 임신 5개월째였는데도 온라인 머천다이저에 도전장을 냈다. 쇼핑몰 가운데 선두그룹에 속하는 삼성몰을 고른 것도 그의 이런 새로운 배움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그가 온라인 머천다이저로 첫발을 내디뎠을 때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상품 계획을 세울 판매자료가 없다는 거였다. 그는 그동안 익혀온 감각에 의존해 그해의 상품계획을 세웠다. “사이트 구성이나 진열하는 방식, 이미지를 코디네이팅하는 방식들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어요. 창조력이 필요하죠.”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온라인 쇼핑은 이미지가 중요하다. 아무데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거면 처음부터 흥미를 끌지 못한다. 시중 흐름에 뒤처지지 않게 사이트를 수시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물량이 떨어지지 않았는지를 관리하는 것은 기본이다. 온라인 고객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24시간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한달에 두번 이상 오프라인 백화점이나 유명 브랜드 매장을 둘러본다. 명품 브랜드 전시장도 그가 꼭 들르는 곳이다. 최근에 나오는 신상품의 종류나 디자인을 꼼꼼히 살펴보고 참신한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다. 입고 싶은 생각이 들면 ‘저건 뜰 것 같다’는 느낌이 온다. 그는 올해에 후드 스타일의 더플코트가 유행할 거라고 점찍었다. 더플코트는 지금 시중에서 불티나듯 팔리고 있는 패션상품 가운데 하나다. 온라인 머천다이저가 주로 컴퓨터에 의존하는 일이어서 언뜻 오프라인보다 더 바쁠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시중의 유행보다 앞서야 하는데다 24시간 고객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재연씨는 더 눈코 뜰 새가 없다. 아기에게 미안하고 사정을 잘모르는 남편과 부부싸움도 잦아졌다. 그래도 그는 말한다. “그런데요, 일을 내버려두고 어떻게 집에 가요?” 그의 일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당분간 그의 부부싸움은 그칠 것 같지 않다. |